본문 바로가기

정치경제사회/2008 촛불집회

[촛불집회] 민변 변호사의 글

http://www.slrclub.com/bbs/vx2.php?id=free&page=1&sn1=&sid1=&divpage=735&sn=off&sid=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027296


---------------------------------------------------------------------

정부의 일보후퇴로 ‘광우병쇠고기 투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정부가 일단 백기를 들고 일보후퇴하는 모습을 보여,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식의 기만책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가 있습니다. 여기서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 기회에 쐐기를 단단히 박아 놓아야 할 듯 합니다.

저 역시, 최근 연일 대량연행자[5/24부터 6/2까지 총 544명 : 10만명이상이 참가한 토요일(5/31-6/1) 시위관련 228명, 3만명 이상이 참가한 일요일(6/1-6/2) 시위관련 78명 등]가 발생하면서 거리에서 촛불집회참가, 또 한편으론 경찰서를 다니며 연행자들에 대한 변호인접견으로 바삐 다녔습니다.

변호인접견을 하며 연행자들의 면면을 확인하면서, ‘광우병쇠고기 투쟁’의 성격의 일단을 엿봅니다. 접견결과를 정리해 봅니다. 6회에 걸쳐 도합 38명을 접견하고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입니다(강북경찰서 1회, 노원경찰서 3회, 도봉경찰서 2회였음. 5/30 전농의 청와대앞 연좌시위 연행자 10명 제외, 이하 28명 기준).

1. 직업이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범국민적 투쟁임을 뜻합니다.
대학원생 1명
대학생 6명(예술대 2명, 성대 2명, 연세대 1명, 디지털대 1명)
미국유학생 1명
공공기관 직원 1명
언론인(기자등) 2명
건축설계사 1명
자영업자 1명
미용사 1명
중국집주방장 1명
영화연출스탭 1명
일용노동자 1명
일반 회사원 5명(비정규직 포함)
신앙공동체생활 1명
고시준비생 1명
대입준비생 1명
무직(알바포함) 3명

2. 운동단체나 사회단체에 소속되어 활동중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반시민들이 광범하게 참여한 범국민적 시민대항쟁 임을 뜻합니다. 그러다보니 전과가 전혀 없는 사람이 거의 전부였고 아예 경찰서라는 곳에 처음 온 사람도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조사시 “석방되면 또 참석하겠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또 참석하겠다”고 당당하게 답했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3. 거주지도 다양했는데, 지방에서 올라와 참가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인천, 포천, 동두천, 대전, 평택, 수원에서 상경하여 참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4. 체포 및 연행과정에 구타 등 심하게 폭행을 당한 사람도 7명에 달했습니다. 체포시에 집단 폭행을 당하고, 머리채가 잡힌채 길바닥에 질질 끌려연행되어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습니다. 찰과상과 타박상 등 구타의 흔적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버스에 태워진 후에 폭행당하였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체포 및 연행과정에 소지품이 파손되거나 분실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옷이 찢어진 사람이 많았고, 안경분실 3명, 신발분실 1명, 모자분실 2명, 가방파손 2명 등도 있었습니다. 체포 및 연행과정에 경찰폭력이 적지 않음을 말합니다.

5. 소위 ‘미란다원칙’(체포시에 범죄사실요지, 체포이유,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해야 함)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28명중 체포 현장에서 제대로 고지받은 사람은 1명도 없었고, 대부분이 경찰호송버스에 태워진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괄 고지를 받았으며, 경찰서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예 고지를 받지 못한 사람도 3명 있었고(일괄 고지후 탑승했기 때문인 듯), 경찰버스 내에서 오히려 연행자들의 요구(“왜 고지 안하느냐?”)로 인해 고지받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전부 불법체포이고 불법감금입니다.

6.
(1) 연행된 사람들 중에는 친구랑 같이 있다가 친구가 잡혀가는 것을 보며 손을 꼭붙들고 빼내려하다가 끝내 손을 놓쳐 연행을 막지 못한 자괴감에 자진하여 “나도 체포해 달라”고 요구하여 경찰과 사이에 “그냥 가라” “잡아가라”는 실랑이 끝에 붙들려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2) 모 음악잡지사 기자인데, 야근을 마치고 밤12시 넘어 퇴근길에 택시를 탔다가 시위로 길이 막혀 하차한 후 근처에서 들리는 여자들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가 하차 5분여만에 휩쓸려 함께 연행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택시영수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탑승시간과 하차시간이 기록되어 있어 진술의 신빙성이 확인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연행된 사람이었습니다.

7. 대부분은 체포된 후 변호인접견을 하기 전에는 경찰조사시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인접견 후로도 인적사항을 포함해 완전 묵비를 계속하겠다며 묵비권행사를 확고하게 견지하는 사람도 1명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경찰서에 처음 왔고, 당일에는 집에서 ‘A3 4장(A4 8장)’ 합친 크기의 종이판에 갖가지 그림과 구호를 적어서 정성스레 만든 피켓구호판을 들고 있었습니다. 경찰서까지 꼭 붙들고 챙겨와 가지고 있었는데, 접견시에도 저에게 “잘 만들었지요?”라며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승리와 자신감에 넘쳐있는 참가자들의 참모습이겠지요.

계속... 거리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